우크라이나, 디지털 국가 비전

우크라이나, 디지털 국가 비전
Photo by Mariia Shalabaieva / Unsplash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인가?

세계 곡창지대? 항공우주산업기술 선도국가? 세계 IT 업체들이 주목하는 아웃소싱 중심기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국가? 자유와 용감함의 동일어가 된 나라? 이와 더불어 정부의 디지털화를 선도하는 나라라는 정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오늘 글은 바로 정부의 디지털화, 국가와 사회 간 상호작용을 혁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권위주의 vs 디지털 민주주의

21세기에 들어와 각국 정부들이 전자정부를 추진하고 공공서비스들의 디지털화에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COVID-19로 공공분야에서의 기술 도입은 더욱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전자정부 순위를 보자면 다양한 정치와 경제체제의 국가들이 정부 운영을 혁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 있는 모티브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통제와 레짐의 정당화를 위해서 정부를 디지털화하여 전자정부를 추진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 권위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와 반면 국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소통과 작용을 활성화하고 참여와 정부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디지털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핵심 질문은 정부가 도입하는 전자정부 모델이 국가 중심인가 혹은 국민 중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두 번째 모델에 해당하는 사례입니다.

자료: 2022 UN전자정부평가

전자정부를 도입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정부 시스템과 행정을 단순히 디지털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국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더욱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국가-사회 상호 작용의 혁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전자정부평가: 2년 사이에 23순위 도약

2022년 UN 전자정부평가(EGDI)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년만에 193국가 중 69위에서 46위로, 23순위가 올랐습니다. 인프라가 구축되는 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빨리 수용하는 편입니다. 또한 저중소득국으로는 매우 높은 성과입니다. 저중소득국 평균 EGDI는 0.5032점입니다. 이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0.8029 점을 받았습니다. 2년만에 23순위를 도약한 것은 분명하게 최근 2년 사이 이루어진 발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최근 7개월 사이에 우크라이나의 전자정부는 더 새로운 면을 보여줬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국민들을 지원하여 모범 사례가 될 만한 혁신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줌 인 우크라이나 경험으로 초대합니다.

2014년 존엄성 혁명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자정부의 길

우크라이나 전자정부의 길은 2014년 존엄성 혁명(Revolution of Dignity)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자정부를 위한 ICT 인프라 도입 및 열린 정부를 위한 국제합의에 합류하는 것은 이전에도 시작되었지만 2014년은 중요한 촉발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국민들이 권력 남용, 국민들의 관심 무시, 부정부패 문제 해결과 국가의 책임, 투명성, 그리고 정당성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전자정부는 그 요구에 대한 일종의 대응방안이 되었습니다. 2014년 이후 2019년까지 전자조달시스템(ProZorro), 공무원을 위한 전자 자산 신고, 국민 청원 시스템, 에스토니아의 X-Road를 기반으로 개발된 트렘비타(Trembita) 데이터 교환 플랫폼 도입은 핵심 성과가 되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인구와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만 가능한 모델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이런 평가를 뒤집는 모범 대안이 될 것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스마트폰 안에 국가”

2019년 젤렌스키 대통령의 당선은 더 큰 포컬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당시 젤렌스키 후보의 “스마트폰 안에 국가” (state in a smartphone) 선거 공약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 이후 디지털전환부(MDT)가 설립되어 그 책임과 영향력은 강화되었고 공공서비스 분야 및 정부-사회 간 상호작용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개월 사이에 “Diia” (우크라이나어로 “국가와 나” 혹은 “액션”을 의미)라는 온라인 공공서비스 포털과 모바일 앱이 출범되었습니다. Diia 사용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 8월 말에는 1,8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22년 1월 기준 우크라이나 인구인 4,100만 명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시 제외)에 비해 거의 절반에 이루는 숫자입니다. 전자정부의 선두주자인 에스토니아도 우크라이나 전자정부 성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자여권에 종이 여권이나 ID 카드와 같은 효력을 부여한 세계 최초 국가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Diia 앱을 통해서 여권, 운전면허증, 학생증, 차량등록번호 등 11 개 디지털 서류를 발급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디지털 외국인등록증 발급 서비스도 소개되었습니다. 여권의 경우, 기타 국가들도 여권에 전자 ID를 발급하는데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와 어떤 면에서 다른가”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폴란드, 영국, 핀란드, 에스토니아, 중국 국민들도 디지털 신분증을 발급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자 여권은 법률적으로 종이 여권이나 ID카드와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고 국내 사용에 있어서 제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크라이나는 전자 여권을 합법화한 세계 최초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거지 변경, 출생신고, 국민지원금 신청, 세금과 벌금 납부 등 70개 이상의 공공서비스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전환부는 2024년까지 모든 공공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을 때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는 디지털 불평등 및 소외된 국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디지털 스킬이 부족한 국민이 있는 것을 인지하여 정부는 디지털 교육 플랫폼(Diia.Digital Education)을 출범하기도 했습니다. 키이우사회과학연구소(KIIS)가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e-서비스 사용자는 청년 혹은 중년자, 중등교육 후의 교육을 받은 자, 어느정도 소득이 있는 자, 그리고 도시 시민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반면 e-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국민은 상대적으로 학력과 소득이 낮고 5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목적은 60세 이상인 국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고자 합니다.

전쟁 속 전자 정부 혁신

전쟁이 시작되자 우크라이나 전자정부는 상황에 대응하여 전자정부의 또 따른 얼굴과 기능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전자정부는 전쟁 속에서도 국민들을 지원하며 정부와 사회 간 소통을 혁신하고 사이버 전선에서도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국내실향민과 피난민이 된 국민들은 단순화된 전자 ID를 Diia에서 발급받아 국민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습니다. 계엄령 중 국가에서는 본인을 인증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서류들을 챙기지 못 하거나 잃어버린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국민들을 지원하는 데에 있어서 전자 ID가 중요한 조치입니다. 또한 몰도바 및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의 합의에 따라 전자 여권 및 단순화된 전자 ID를 인정합니다.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러시아가 잠시 점령한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를 전자 정부 서비스를 이용해 출생을 신고하여 우크라이나 국적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은, 사회 취약계층, 국내실향민과 피난민들은 전자 서비스를 이용해 국민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주거 인프라와 개인소유재산이 파괴되거나 파손되었습니다. 국민들은 Diia를 통해서 잃어버린 재산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복구 사업을 이미 계획하는 우크라이나에는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 출처가 됩니다. 현재까지는 16만 건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방송과 라디오의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은 Diia를 통해서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디지털전환부는 국민들이 러시아군 이동을 촬영해서 보고할 수 있는 eVorog (E-적) 텔레그렘 챗봇을 개발했습니다. 현재까지는 약 37만 건의 정보가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이 챗봇은 Diia를 통한 인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짜 보도를 방지할 수 있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자정부의 콘트롤 타워가 된 디지털전환부는 국민들을 위한 전자 서비스 개발, 통신 인프라 고도화, 민방위 경보시스템 개선, 기부 플랫폼 추진, IT 산업 발전을 위한 혁신, IT 전문가 네트워크 지원, 세계 테크 기업과 협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세계 테크 기업들이 R&D 센터를 둔 국가로, IT 산업의 주요 아웃소싱 국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는 IT 산업 발전을 위한 장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즉 Diia City라는 특별 세금법률조례를 소개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IT 전문가들은 세계 봉사자들과 함께 IT 군대를 형성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쟁 속에도 부흥하는 IT 산업은 더 다른 글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온라인으로 남아있는 것은 인터넷 시장 자유화를 선택한 것 덕분

전자정부와 디지털 국가를 지향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프라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정보와 통신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인터넷 커버리지를 확장했을 때 독점 기업에 업무를 맡기는 것보다는 시장 자유화를 선택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100개 이상의 고정 인터넷 제공 업체가 활동한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외부로부터의 독점 업체 점령에 의한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 혹은 통제 상황이 발생한 바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아직도 온라인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당시 인터넷 시장 자유화를 선택한 것 덕분입니다.

숨은 영웅들

인터넷 인프라와 함께 디지털 정부는 전력 공급에 의존합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지상 통신 인프라가 파괴되거나 전력 공급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신속히 현장으로 향하여 통신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통신 업체 운영자들이 전력이 복구되는 대로 장비가 원활하게 가동하도록 밤을 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대피소에 인터넷 인프라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Starlink와 충전을 위한 태양 전지 패널은 핵심 인프라 운영을 보장하는 데에 크게 기여합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Starlink 터미널 1만5천개 이상이 설치되어 있고 지상 통신 인프라가 취약하거나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지역에서도 군인, 구조대원, 소방관, 의사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자정부와 클라우드 기술

전쟁 전에도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그리고 핵심 인프라를 대상으로 사이버 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정부 데이터 센터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이미 이전한 생태였기 때문에 데이터 손실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외 클라우드로 일부 데이터를 이동했습니다. 이미 폴란드 클라우드 서버로 일부 데이터를 이전했고 프랑스와 에스토니아로의 데이터 이전과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에스토니아와 모나코도 자연재해나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서 룩셈부르크에 e-대사관을 설치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마셜 플랜

우크라이나는 디지털 국가가 되기 위해서 계속 도전합니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부총리 겸 디지털전환부 장관은 루가노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디지털 비전 (Digital for Freedom Initiative)을 제시했습니다. 이 비전에 따르면 2030년까지 우크라이나는 1) 가장 편리한 국가 (모든 공공서비스의 디지털화), 2) 가장 보호된 국가 (정부 데이터 레지스트리 보호), 3) 사이버전선이 강한 국가 (국가의 사이버안전보장), 4) 법원에 AI기술 도입, 5) 60세 이상 인구를 위한 디지털 교육과 디지털 기기 보급, 6) 학생과 교사를 위한 e-교육 플렛폼 및 필요한 인프라와 디지털 기기 보급, 7) 가장 편리한 세관 (e-세관), 8)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인들의 재활을 위한 e-헬스, 그리고 9) 현금 없는 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한국은 OECD와 UN 전자정부 평가에 있어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관세청은 이미 세계가 인정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규제혁신을 이룬 바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재건하면서 기존 인프라 복구뿐만 아니라 더 편리하고 더 안전하고 시대와 함께 하는 우크라이나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